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영국 동인도 회사 (문단 편집) === 타 열강과의 경쟁 === 동인도 회사는 포르투갈 세력을 '''일방적으로 압살'''했다. 포르투갈은 국가 규모에 비해 해상영역이 지나치게 넓은데다 2세기에 가까운 항로 개척의 시기 동안 숙련된 항해사와 선원, 선박 다수를 자연적으로 소모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동 시기 네덜란드 회사가 동남아시아에서 신나게 포르투갈을 털어먹고 있었기 때문에 잉글랜드 회사는 인도와 인도양에서 수월하게 포르투갈을 격파할 수 있었다. [[1622년]]과 [[1623년]]에 걸쳐 잉글랜드 회사는 [[페르시아]]와 협력하여 포르투갈 세력을 축출했다. 이후 [[포르투갈 왕정복고전쟁]]이 발발하고 [[이베리아 연합]]이 해체되는 와중에 잉글랜드와 포르투갈은 정전하였고, 1662년 포르투갈의 [[브라간사의 카타리나|캐서린]] 공주가 잉글랜드의 [[찰스 2세]]에게 시집올 때 [[지참금]]으로 [[뭄바이]]를 들고 오며 포르투갈은 인도에서 손을 떼게 되었다.[* 사실 잉글랜드가 포르투갈 독립 세력을 지원해준 것도 있다. 그때부터 잉글랜드와 포르투갈은 지금껏 수백년에 걸친 동맹국이 된다.] 문제는 네덜란드였다. [[1623년]] 잉글랜드 동인도회사가 암보이나에 설립한 상관의 [[주재원]]들이 네덜란드 회사에 의해 모두 처형당하는 암보이나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에 대해 '''잉글랜드 회사는 힘이 없어 찍소리도 못했다.''' 이후 잉글랜드는 [[정향]], [[육두구]] 같은 고급 향신료 시장에는 진출하지 못했고, [[동북아시아]]로의 항로 개설 시도도 네덜란드 회사의 방해로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대만]]의 경우 [[정성공]]과 영국 회사 모두 네덜란드에 적대하는 입장이어서 상호 협력관계까지 맺었지만 그 이후 대만으로 보내는 잉글랜드 회사의 선박이 모두 네덜란드측에 의해 나포, 격침되면서 협력 유지에 실패하고 말았다. ~~그리고 [[정씨 왕조]]도 망했다~~ 이후 [[1682년]]에는 회사의 가장 오래된 상관인 반탐마저 네덜란드 세력권에 들어가면서 상관을 폐쇄해야 했다. 이렇게 회사는 포르투갈과의 인도 및 인도양 경쟁에서 압승, 네덜란드와의 동남아시아 경쟁에서 참패했다. 그리고 이는 당대 기준으로는 누가 뭐라 해도 완벽한 네덜란드의 승리였다. 네덜란드는 정향, 육두구 등의 고급 향신료 시장을 독점했고, 잉글랜드가 인도에서 들여오는 후추는 너무 흔해져서 가격이 폭락하고 있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향신료 시장에서의 패퇴는 잉글랜드 동인도 회사에게 성장의 계기를 마련하게 해주었다.''' 향신료 시장을 잃은 회사가 다른 무역대안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반대로, 네덜란드 회사는 향신료만 믿다가 향신료 값이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뒤늦게야 발버둥을 치지만 이미 때는 늦었고, 영국 회사가 인도로부터 들여오는 [[면직물]][* 조선 후기에 청나라에서 수입하여 옥양목이라고 불렀던 제품.]은 대박이 났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